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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가 영구동토 붕괴 부른다

lcs20230 2020. 3. 18. 00:45

얼어붙은 토양은 단순히 탄소만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지형을 물리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메리트 투레츠키 외, ‘네이처’ 5월 2일자에 실린 기고문에서)

 

올 여름은 작년보다는 덜 더울 거라는 예보도 있고 봄 기온도 무난해 안심하고 있었는데 지난주에 갑자기 무더위가 찾아왔다. 24일 낮 경북 영천이 35.9도까지 치솟았고 서울도 33.4도까지 올라갔다. 이날 밤 강원 강릉은 최저기온이 27.4도로 ‘여유 있게’ 열대야를 기록했다. 

 

아무래도 이제 더위는 구조적인 문제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최근 학술지 ‘네이처’에 영구동토에서 온실가스 방출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기고문이 실린 게 떠올랐다. 지구온난화로 땅이 녹으면서 깨어난 토양미생물이 땅속에 잡혀있던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온실가스가 나오고 이게 또 지구온난화를 심화시킨다는 악순환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영구동토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본 적이 없어 이참에 기고문을 읽어봤다. 

 

탄소 1조6000억t 묻혀있어

 

캐나다 구엘프대 메리트 투레츠키 교수와 동료들은 영구동토가 녹으면서 갑자기 붕괴하는 현상이 잦아지면서 툰드라에서 방출되는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 효과가 두 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겨울 내내 얼어있던 땅이 이른 봄에 녹으면서 질척해지는 식으로 영구동토도 녹는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필자로서는 뜻밖의 언급이다.

 

기고문에 따르면 최근까지 영구동토가 녹는 모델이 바로 필자의 생각이다. 한마디로 상식적인 관점이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지표부터 조금씩 녹아내리고 이 과정에서 토양미생물이 깨어나 유기물을 분해하면서 이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온실가스가 방출된다는 시나리오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300년 동안 영구동토에서 약 2000억t의 온실가스(이산화탄소로 환산)가 방출될 전망이다. 

 

사실 이 모형이 맞더라도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땅속에 묻혀있는 엄청난 유기물이 온실가스로 바뀌며 방출돼 지구온난화와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 작용을 하는 건 마찬가지다. 참고로 영구동토에는 1조6000억t의 탄소가 묻혀있는데, 이는 대기 중 탄소의 두 배에 이르는 양이다. 

 

그런데 최근 관찰에 따르면 영구동토의 붕괴는 이보다 훨씬 과격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얼어붙은 땅은 단순히 미생물이 활동하지 못하게 해 토양 속 유기물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지형지물을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영구동토가 녹을 때 땅이 매년 수 ㎝씩 야금야금 녹는 게 아니라 불과 수일 내지 수주 사이 수 m의 토양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마치 건물에서 철골이 녹아내리면 구조를 지탱하는 힘이 사라져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지듯이 땅의 구조를 지탱하는 얼음 네트워크가 녹으면서 땅꺼짐 같은 붕괴가 일어나고 빈 공간에 녹은 물이 채워져 연못이나 호수가 생기기도 한다. 이런 지형을 열카르스트(thermokarst)라고 부른다.

 

저자들에 따르면 지난 30년 사이 이런 현상이 점점 잦아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알래스카에서 숲이었던 지역이 불과 1년 뒤 다시 찾았을 때 호수로 바뀌어 있었고 한때 맑은 물이 흐르던 강은 붕괴된 토사가 흘러들어 흙탕물이 급류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영구동토에서 상대적으로 더 불안정한 지역에 탄소가 더 높은 농도로 존재하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동부 시베리아와 캐나다, 알래스카를 포함한 100만㎢ 넓이(우리나라 면적의 10배)의 예도마(Yedoma) 지역은 토양의 유기물 함량이 높고(탄소로 2%) 50~90%가 얼음이라 지구온난화에 특히 취약하다. 이곳에 매장된 유기탄소의 양은 1300억t으로 지구촌 76억 명의 활동으로 10년 동안 내보내는 온실가스의 양보다도 많다. 

 

지난해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는 영구동토가 서서히 녹는 지역과 갑자기 녹아 연못이나 호수가 생기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양을 측정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땅이 서서히 녹는 지역에서는 토양에서 방출한 양과 식물이 자라면서 흡수한 양이 비슷해 이산화탄소의 순 방출량은 미미하지만 갑작스럽게 녹은 열카르스트 호수에서는 이산화탄소뿐 아니라 메탄의 방출량도 꽤 된다.

게다가 메탄은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28배나 된다. 연구자들은 북서 알래스카에서 새로 형성된 열카르스트 호수에서 나오는 메탄의 양이 영구동토가 서서히 녹는 지역의 같은 면적에 비해 130~430배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호수에서 방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줄어들고 때로는 물이 말라 호수가 사라지기도 한다.

 

알래스카페어뱅크스대 등 미국과 독일의 공동연구자들은 이런 상황을 반영했을 때 2100년까지 영구동토가 급격히 붕괴되면서 방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123억t(이산화탄소로 환산했을 때)으로 서서히 녹으면서 방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64억t보다 두 배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예상보다 세 배는 더 나오는 듯

 

이런 상황은 서부 시베리아도 비슷하다.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4월 4일자에는 서부 시베리아 저지대의 열카르스트 호수 76곳의 탄소 방출량을 조사한 결과가 실렸다. 서부 시베리아 저지대는 면적 130만㎢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이탄지대(peatland)로 유기 탄소가 700억 t이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자들은 호수가 녹기 시작하는 시점과 한여름, 얼기 시작하는 시점 등 세 차례에 걸쳐 76개 호수에서 방출되는 탄소(이산화탄소와 메탄)의 양을 측정했고 이를 토대로 이 지역 열카르스트 호수에서 나오는 탄소의 양을 계산했다. 그 결과 서부 시베리아 저지대에서 1년에 약 1200만t의 탄소가 방출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북극해에 면한 다른 동토 지역에서 나오는 양의 두 배에 이르는 값이다.

 

그렇다면 영구동토가 녹으면서 나오는 온실가스의 양은 얼마나 될까. 지난 2011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는 가장 비관적인 전망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이산화탄소로 환산했을 때 2040년까지 300억~630억t이 방출되고 2100년으로 범위를 넓히면 2320억~3800억t이 나온다. 앞으로 300년 동안 2000억t이 나올 거라는 기존 전망과 비교해보면 엄청난 차이다. 참고로 2010년 한 해 동안 인류가 내놓은 온실가스의 양은 이산화탄소로 환산했을 때 480억 톤이다. 

 

메리트 투레츠키 등 저자들은 ‘네이처’ 5월 2일자에 실린 기고문에서 “영구동토가 갑작스럽게 녹는 현상을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예측하는 노력을 통해 거주하는 사람들과 자원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자들은 “인류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영구동토의 탄소가 대기로 방출되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온실가스 배출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고 있는 현실에서 설상가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작년 여름 같은 무더위가 예외가 아니라 전형이라고 생각하고 올 여름을 맞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