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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신문에는 벌써 ‘삼한사미(三寒四微)’라는, 수년 전 만들어진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이 말의 원조인 ‘삼한사온(三寒四溫)’은 우리나라 겨울이 사흘은 추워도 나흘은 포근해서 버틸 수 있다는 뜻으로 ‘삼한’이 겨울의 부정적 측면이었지만,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라는 신조어에서는 ‘차라리 추운 게 낫다’는 뉘앙스로 바뀌었다.
겨울철 미세먼지는 서풍의 영향과 중국의 난방에서 기안한 영향이 크지만 한가롭게 남의 탓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대응방안을 속속 마련하고 있다. 지난주 환경부는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는 내년 2월 15일부터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지면 수도권에 등록된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5등급 차량만 쉬어도 자동차 미세먼지 배출량의 절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방송 뉴스에서 이 소식을 전하면서 5등급 차량의 배출가스 실상을 보여준다며 연출한 장면을 보고 좀 충격을 받았다. 젊은 기자가 마스크도 쓰지 않고(말을 해야 하므로) 5등급을 받은 디젤차 배기구에 맨손을 내밀자 순간 손과 팔뚝에 시커먼 검댕이 들러붙었다. 분명 극적 효과는 봤겠지만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기구 앞에 흰 천을 갖다 대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최소한 흰 장갑을 낀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 기자가 나서서 ‘살신성인’한 거라면 할 말이 없지만 만에 하나라도 주위에서 요구한 거라면 문제가 있는 장면일 것이다. 아무튼 요즘은 자동차 배기구에서 나오는 시커먼 연기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시커멓게 만들고 있다.
유해물질 운반하는 트로이의 목마
그러나 이런 시커먼 검댕이 수치화해 발표하는 미세먼지인 건 아니다. 즉 PM10(지름 10㎛(마이크로미터. 1㎛는 100만분의 1m) 미만인 미세먼지)나 PM2.5(지름 2.5㎛ 미만인 초미세먼지) 자체는 너무 작아 맨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기자의 손에 묻은 검댕을 보며 충격을 받았겠지만, 기자의 폐에도 그 순간 함께 나온 미세먼지가 꽤 달라붙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검댕’이라고 부르는, 매연에 포함된 시커먼 입자는 수많은 미세먼지가 뭉쳐져 있는 상태다. 그런데 화학에서 검댕의 정의는 좀 다르다.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보다도 작은 바이러스 크기의 탄소 기반 나노입자도 ‘검댕(soot)’이라고 부른다. 분자에서 고체로 전환하는 시점부터다.
예를 들어 공기 중에 아세틸렌(C2H2) 분자가 떠다니는 건 기체 상태다. 반면 공기 중에 검댕 나노입자는 기체와 고체 상태가 공존한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고체나 액체 입자를 ‘에어로졸(aerosol)’이라고 부른다.
황사를 빼면 미세먼지 대다수는 검댕 나노입자 여럿이 뭉쳐져 있는 상태로, 그 크기에 따라 초미세먼지나 미세먼지 또는 맨눈에 보이는 (일상적 의미의) 검댕으로 불린다. 미세먼지의 유해성 하면 떠오르는 질소산화물이나 황산화물, 중금속은 검댕 나노입자 표면에 달라붙어 공기 중에 떠돌다가 우리가 숨을 쉴 때 몸 안으로 들어온다. 검댕 나노입자는 미세먼지의 몸통이지만 인체 유해성의 관점에서는 ‘트로이의 목마’인 셈이다.
불완전 연소가 출발점
그런데 생각해보면 디젤유가 엔진 속에서 연소할 때 배기구에서 시커먼 연기가 나온다는 건 좀 놀라운 현상이다. 노르스름한 투명 액체가 어떻게 순식간에 시커먼 가루로 바뀌는 걸까. 시커먼 입자는 검댕 나노입자가 뭉친 덩어리이므로, 이 질문은 ‘탄소 8~21개인 분자가 어떻게 검댕 나노입자로 바뀌는가?’로 바꿀 수 있다.
이 과정의 출발점은 불완전 연소다. 탄소원자와 수소원자로 이뤄진 탄화수소분자가 공기 중의 산소분자와 완벽하게 반응하면(100% 산화) 전부 이산화탄소분자와 물분자로 바뀐다. 이를 완전 연소라고 부른다. 따라서 배기가스에는 이들 분자와 함께 디젤유에 포함된 불순물이 나오는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탄화수소가 100% 산화되기는 어렵다.
독일 뮌헨공대의 화학자 라인하르트 니스너 교수는 2014년 학술지 ‘앙게반테 케미’에 발표한 리뷰논문에서 디젤유가 불완전 연소를 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엔진 내부로 기름방울이 분사될 때 방울 내부와 기체분자 농도가 높은 방울 표면 바로 위 공간에 산소가 부족해 고온에서 화학반응(열분해)이 일어나는 순간 완전히 산화되지 못하고 아세틸렌 같은 작은 분자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들 분자 사이에서 연속적인 반응이 일어나 분자가 점점 커지다 결국은 검댕 나노입자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과정을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엔진 내부처럼 1000도가 넘는 고온에서는 고체도 녹아 액체나 기체로 바뀌는데 어떻게 작은 기체분자가 서로 합쳐져 커다란 고체입자가 되는지는 미스터리였다.
안정한 라디칼 존재 확인
그런데 지난 9월 7일자 학술지 ‘사이언스’에 산디아국립연구소의 호프 미첼센 박사를 비롯한 미국의 공동 연구자들이 이를 설명하는 메커니즘을 제시한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연구자들은 탄화수소 연료의 불완전 연소가 일어날 때 아세틸렌뿐 아니라 다양한 작은 라디칼이 만들어진다는 데 주목했다. 라디칼은 분자를 이루는 원자들 사이의 결합에 참여하지 않는 전자를 지녀 반응성이 큰 분자다. 보통은 라디칼끼리 반응해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 같은 큰 분자가 만들어진다. 실제 불완전 연소 과정에서 PAH가 많이 만들어지고 검댕 나노입자에 들러붙어 우리 몸에 들어와 치명적인 작용을 한다.
그런데 아세틸렌이나 작은 라디칼이 전부 PAH로 바뀌면 더 이상 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이보다 훨씬 큰 검댕 나노입자가 만들어질 수 없다. 연구자들은 질량분석기로 연소과정에서 나오는 물질을 분석했고 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작은 라디칼이 화학반응을 통해 점점 큰 라디칼로 바뀌는 것이었다.
PAH처럼 탄소 골격 사이에 이중결합이 여러 개 있을 경우 전자들이 공명(resonance)이라는 양자역학적 특성을 띠면 안정한 분자가 된다. 그런데 몇몇 PAH는 라디칼이 돼야 공명을 할 수 있는 전자개수를 맞출 수 있다. 그 결과 이런 PAH는 만들어지자마자 수소원자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서 라디칼이 된다. 이렇게 형성된 라디칼은 안정하면서도 반응성은 큰 독특한 특성을 지녀 연구자들은 ‘공명-안정화된 라디칼(resonance-stabilized radical)’이라고 명명했다.
결국 공명-안정화된 라이칼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점점 덩치가 커지고 더 안정한 라디칼이 만들어지다 이들이 서로 뭉쳐 지름 1~4㎚(나노미터. 1㎚는 10억분의 1m)의 3차원 구조물인 ‘검댕 씨앗’이 된다. 일단 씨앗이 형성되면 주변에 있는 탄화수소와 라디칼이 순식간에 달라붙어 마치 눈덩이가 불어나듯 커지며 지름 10~50㎚인 공모양의 ‘검댕 나노입자’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검댕 나노입자들이 뭉쳐 미세먼지가 되고 미세먼지가 뭉쳐 맨눈에 보이는 시커먼 검댕이 되는 과정은 잘 알려져 있다.
검댕은 디젤이나 가솔린 같은 석유류뿐 아니라 석탄, 나무 등 탄소로 이뤄진 물질이 연소할 때 늘 생기므로 공명-안정화된 라디칼을 통해 검댕 나노입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자연계에서 널리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이번에 밝혀진 검댕 나노입자가 형성되는 메커니즘은 놀라우면서도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지나치게 만들어져 미세먼지의 형태로 인체에 침투해 매년 수백만 명을 조기 사망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