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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 기차는 이미 역을 떠났다.
- 안토니오 구테헤스, UN 사무총장
트럼프는 잊어라. 우린 그 사람 없이도 해낼 수 있다.
- 미국 ‘We Are Still In’ 캠페인의 메시지.
원자력과 화석연료는 재생에너지가 나오지 못할 때 기저부하 발전을 제공한다. 특히 천연가스발전소는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 여하에 따라 즉각 작동을 하거나 멈출 수 있다.
- 로버트 서비스, ‘사이언스’ 기사에서
탈석탄. 탈원전.
새 정부 들어 시작된 에너지 정책 대전환 프로젝트는 위의 두 단어로 요약된다. 탈석탄 정책이야 파리기후변화협약 체제를 맞아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지난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2030년 전망치 대비 37%를 줄이겠다고 발표해 국제무대에서 찬사를 받았지만 정작 석탄화력발전소를 지어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는 모순된 정책을 폈다.) 탈원전은 안 그래도 벅찬 목표를 이루는데 큰 도움이 될 원전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므로 현재 논쟁이 분분하다.
사실 원전이야 과학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정치의 문제이기 때문에 (100% 안전한 게 아니므로 싫다는 여론(심리)이 우세하면 정치권은 이를 외면하기 어렵다(정치). 이 자리에서 필자까지 뛰어들 의욕은 없다. 다만 이미 수조 원이 들어간 신고리 5․6호기까지 백지화하는 (물론 평가를 위해 공사를 일시중단하기로 했다지만 이건 수순일 뿐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결벽증적’ 정책을 보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옛말이 떠오르기는 한다.
아무튼 정부는 현재 에너지란 건물을 받치고 있는 석탄과 원자력이라는 두 기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궁극적으로 기둥 자체를 없애는 대신 천연가스와 신재생에너지라는 다른 두 기둥을 강화해 건물을 지탱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먼저 신재생에너지를 보면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4.6%에서 20%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불과 13년 사이에 이게 과연 가능한 목표냐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여덟 가지 재생에너지 (태양광, 태양열, 풍력, 수력, 지열, 해양, 바이오에너지, 폐기물)와 세 가지 신에너지 (수소, 연료전지, 석탄액화가스) 가운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지금 기술 수준에서 에너지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게 있느냐는 물음에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비율 가운데서도 80% 이상은 폐기물과 바이오연료 (주로 목재)를 태워 얻는 거라는 사실을 보면 더 그렇다.
● 지구촌 이산화탄소 배출량 올해부터 줄지도
물론 신재생에너지가 여전히 ‘빛 좋은 개살구’라는 얘기는 아니다. 현재 지구촌에서는 에너지 대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학술지 ‘네이처’ 6월 29일자에는 2015 파리기후변화협약의 목표 (온실가스배출을 억제해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평균 기온보다 2도 (가능한 1.5도) 이내로 유지하는 것)가 실현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의 기고문이 실렸다.
크리스티아나 피구어레스 미션2020 부의장 등 지구 에너지 정책 전문가 5명은 교토의정서가 만료되고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적용되는 시점인 2020년을 전후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정점을 칠 것이라는, 즉 그 뒤 감소세로 돌아설 거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지난 3년 사이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증가세를 멈췄고 어쩌면 2016년을 정점으로 올해부터 감소세로 돌아설 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고 있다.
지구촌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줄어든 경우는 이미 세 차례 있었지만 모두 경제침체와 관련이 있다. 즉 1980년대 초와 1992년, 2009년으로 오일쇼크와 금융위기 등으로 세계적인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그런데 최근의 발생량 정체는 지구 경제가 연간 3% 수준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상태에서 일어난 것이다.
저자들은 이런 변화를 이끈 나라들로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을 들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국내총생산이 1.6% 늘어났음에도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3%나 줄었다. 중국 역시 지난해 경제가 6.7%나 성장했음에도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오히려 1% 줄었다. EU는 발생량 감소가 시작된 지 꽤 됐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의 전력수효가 5.4% 늘었지만 그 가운데 3분의 2를 신재생에너지 (주로 수력과 풍력)가 맡았다. 미국 역시 지난해 신규 발전의 3분의 2 가까이가 신재생에너지에 기반하고 있다. 에너지 혁신 모범생인 EU는 지난해 풍력과 태양광이 신규 에너지의 4분의 3 이상을 맡았고 석탄수요는 10%나 감소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발전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2015년 23.7%에서 2020년 26~27%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2050년에는 태양광만으로 지구촌 전기 생산량의 29%를 감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른 나라들은 다 되는데 왜 우리는...’ 이런 의문이 들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신재생에너지를 이끄는 태양광, 풍력, 수력 모두 여건이 좋지 않다. 농사지을 물도 없어 쩔쩔매는 물부족 국가이므로 수력은 말할 것도 없고 풍력 역시 바람이 많은 곳이 적고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발전기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다. 필자는 십수 년 전 대관령에 놀러 갔다가 풍력발전기를 처음 보고 두 번 놀랐는데 생각보다 너무 컸고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남은 건 태양광인데 우리나라는 일조량도 많지 않고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며칠 씩 해를 보기 어렵다) 역시 부지 확보도 쉽지 않지만 현재로서는 이를 늘리는 게 그나마 해결책인 것 같다. 다만 태양광의 비율이 커지는 만큼 작동하지 않을 때를 대비한 백업요원 (결국은 화력발전이다)도 늘려야 한다. 결국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기까지 우리나라에서 ‘탈석탄 탈원전’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유일한 대안은 천연가스인 셈이다.
● 탄소배출 제로인 천연가스발전
‘그런데 천연가스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천연가스에 올인하는 게 위험한 선택일수도 있지만 상황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셰일가스가 채굴되는 등 천연가스 매장량이 아직은 여유가 있는데다 각국의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올라갈수록 석탄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는 천연가스 수요도 떨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연가스 역시 화석연료 아닌가?’
물론 그렇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다른 화석연료와 큰 차이가 난다. 동일한 에너지를 낼 때 천연가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석탄의 절반 수준이고 석유(가솔린)의 4분의 3 수준이다.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CH4)은 이산화탄소가 될 탄소원자와 물이 될 수소원자의 비율이 1:4이지만 석탄은 그 비율이 1:2 보다도 차이가 적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원자력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아무튼 당분간 우리는 천연가스를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천연가스를 좀 더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 초임계유체 이산화탄소로 터빈 돌려
학술지 ‘사이언스’ 5월 26일자에는 이산화탄소와 오염물질의 발생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인 천연가스 발전 장치의 데모 플랜트가 조만간 완공돼 작동에 들어갈 것이라는 심층 뉴스가 실렸다. 이 새로운 장치의 핵심은 기존 화력발전의 핵심 장비인 증기터빈 대신 초임계유체 이산화탄소 터빈을 쓴다는 것. 즉 기체인 수증기 대신 초임계유체 상태인 이산화탄소가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해낸다는 말이다.
미국의 스타트업 넷파워(NET Power)가 텍사스 휴스턴 근교에 짓고 있는 25메가와트급 데모 플랜트는 로드니 알램이라는 은퇴한 화학공학자가 고안한 ‘알램 순환(Allam cycle)’을 채택한 천연가스발전소다. 이 장치의 원리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천연가스복합화력발전을 잠깐 살펴보자.
천연가스와 공기를 혼합해 연소하면 뜨거운 기체가 나오면서 가스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어낸다. 터빈을 나온 기체는 압력이 떨어지지만 여전히 뜨겁기 때문에 보일러로 들어가 물을 끓이고 수증기가 증기터빈을 돌려 또 전기를 만든다 (그래서 ‘복합’이다). 압력이 낮아진 수증기는 냉각탑에서 물로 액화돼 다시 보일러로 간다. 이처럼 터빈 두 개를 돌리기 때문에 천연가스복합화력발전의 발전효율은 60%에 가깝다. 참고로 석탄화력발전은 석탄을 태워 수증기를 만들어 증기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므로 발전효율이 40%가 채 안 된다.
알램이 설계한 발전시스템은 공기 대신 순수한 산소 (물론 공기에서 정제한)를 써서 천연가스를 연소한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물 (수증기)만이 나온다( 공기를 쓸 경우 79%를 차지하는 질소가 따라 다닌다). 이때 연소기 내부의 압력을 대기압의 300배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이산화탄소를 흘려보내면 연소열로 1150도까지 가열된 이산화탄소는 초임계유체 상태가 된다. 초임계유체는 액체처럼 밀도가 높을 때도 기체처럼 행동한다. 초임계유체 이산화탄소는 수증기보다 밀도가 훨씬 높아 강력한 힘으로 터빈을 돌릴 수 있기 때문에 기존 증기터빈의 10분의 1 크기로도 같은 전력을 낼 수 있다.
터빈을 빠져나와 다시 기체가 된 이산화탄소는 컴프레서에서 압축돼 연소기로 가고 일부 (연소로 발생한 이산화탄소만큼)는 포집돼 저장된다. 즉 발전(연소)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유출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편 연소 과정에서 발생한 수증기는 열교환장치에서 냉각돼 물로 바뀐다(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냉각탑이 필요 없다).
결국 알램 사이클을 채택한 시스템을 쓸 경우 보일러와 냉각탑이 없어도 돼 발전설비의 규모가 대폭 축소되기 때문에 건설에 들어가는 콘크리트와 철강의 양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넷파워는 올 가을 작동에 들어갈 데모 플랜트가 성공할 경우 2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300메가와트 규모의 발전소를 2021년까지 짓는다는 계획이다. 이 시스템이 성공해 우리나라에도 도입된다면 이산화탄소 발생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접목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협약을 탈퇴하겠다고 몽니를 부리고 있지만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미국의 트렌드가 과거로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미국은 IT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에 이어 최근 에너지 분야에서도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전기차 혁명을 이끌고 있는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는 로켓재활용이라는 꿈같은 아이디어를 실현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의 탈석탄 탈원전 꿈이 현실이 되느냐 여부는 결국 엘론 머스크나 로드니 알램 같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 천재가 나타나느냐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